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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1년 신라 문무왕 11년에 의상에 의해 창건된 '낙산사'는 명실상부 양양의 인기 관광 명소입니다. 당나라 유학길 중 굴에서 자다가 마신 해골물 일화로 유명한 원효대사 의상대사 중 그 '의상'입니다.
무려 약 14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나 역사가 긴 만큼 글자 그대로 다양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우리는 2005년의 양양 산불로 소실된 역사만을 알고 있지만 몽골의 침입으로 소실되기도 하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화재를 겪기도 하는 등 수차례 소실과 중창을 반복하였습니다.
또한 낙산사라는 이름의 유래는 관세음보살이 머문다는 인도의 보타락가산(補陀落迦山)을 낙산(落山)이라고 줄여 부른 데서 따왔는데요.
자세한 내용은 낙산사 설명 링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링크에서 보신 것처럼 역사적인 관광지는 알고 가는 것과 모르고 가는 것에 큰 차이가 있는데 그로 인해 방문의 깊이가 달라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께 추천드리고 싶은 것은 낙산사를 그저 단풍을 보러 그저 들러서 걸으러 가는 게 아니라 '하루 전' 무료 문화 관광해설사를 예약하고 둘러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낙산사 입장료 / 주차
양양의 대표 관광지인 낙산사는 입장료가 무료입니다. 주차는 승용차 4,000원(일주차) 버스 6,000원(일주차)으로 저렴하게 주차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정문과 후문 모두 주차료가 같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정문 주차장이 언제나 후문주차장보다 여유롭습니다.
낙산사 반려견 동반은 어떠한 형태로든 불가합니다.
낙산사 관람동선
낙산에 오신 분들이 흔히 낙산비치호텔이 있는 '후문'으로 입장하시는데 절과 바깥세계의 경계를 의미하는 '일주문'을 통해 들어오셔서 낙산사 정문 주차장에 주차하시고 홍예문(정문)을 통해 입장하시는 게 올바른 동선입니다. 문화관광해설사 예약 시에도 낙산사 정문인 '홍예문'에서 만나게 되니 알고 계시면 좋겠습니다.
낙산사 설명
홍예문
홍예는 중국의 용 혹은 환상종이라고 하는데 보통 무지개의 모습을 하고 있고 수컷을 홍, 암컷을 예라고 하는데 합쳐서 쌍무지개인 홍예가 되는 것입니다. 이 홍예문의 아치는 그러한 쌍 무지개를 표현한 것으로 26개의 돌이 사용되었는데 세조가 방문했을 당시 강원도 26개의 고장을 표시한 것이라고 합니다.
낙산사에 문화관광해설사를 대동하니 시작부터 다릅니다. 그냥 생각 없이 지나가면 이 문이 1467년 조선시대 세조 임금과 관련이 있는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글을 읽고 계신 분이라면 방문 하루 전 꼭 문화관광해설을 예약하시고 방문하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사천왕문
홍예문을 지나 원통보전으로 향하기 전 여느 절마다 있는 사천왕문을 지납니다. 화재가 난 2005년 피해가 없었던 극소수 건축물 중 하나인데 나중에 발굴조사단이 밝힌 결과에 따르면 사천왕문에 상서로운 기운이 있어서가 아니라 화마가 닥쳤을 때 사천왕문 앞에 있는 벚나무가 물을 내뿜어 불타지 않았다고 합니다. (소나무를 제외한 낙산사 나무들은 단풍이 잘 들었습니다.)
사천왕은 수미산이라는 인도 신화 상상 속의 성산의 팔부신중(aka.천룡팔부,불법을 수호한다) 중 으뜸인 호법신-제석천을 호위하는 4명의 호법신으로 동서남북 각 방향을 지키고 있습니다. 동쪽은 지국천왕, 서방은 광목천왕, 남방은 중장천왕, 북방은 다문천왕입니다.
이 사천왕 및 팔부신중의 유래를 살펴보면 바라문교, 힌두교, 자연신앙 등이 어우러진 불교의 문화인데 참으로 복잡다단합니다. 그리고 저는 으레 불교 하면 중국의 종교라고 생각하는데 새삼 인도의 종교라는 게 신기합니다.
범종루
큰 사찰에는 사천왕문과 더불어 이런 범종루가 있는데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사방에 큰 북인 법고, 나무로 만든 목어, 동판인 운판, 범종이 있는데 이 범종을 타종할 때 사방의 모든 것들도 친다고 하는데. 소가죽으로 만든 법고는 땅 위의 짐승들에게, 목어는 물아래 있는 모든 생물들에게 운판은 하늘의 모든 생물들에게, 범종은 모든 사람에게 복을 기원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범종루의 문화가 우리 고유 문화인 사물놀이로 발전했다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보물 제479호였던 낙산사동종은 2005년 화재 때 완전히 녹아버린 후 고증을 거쳐 다시 만들었는데 당연하겠지만 더 이상은 보물이 아니라고 합니다. 모조품일 뿐이지요. (기존 녹은 동종은 낙산박물관 안에 보관되어 있지만 개방을 하지 않아 현재는 볼 수 없다고)
다만 이것이 수천 년간 보전이 된다면 또 어떻게 될까요? 그리고 현세대인 우리가 이와 같은 문화유산들을 후대에 남길 수 있는 게 있을까요? 똑같이 만들었지만 더 이상 보물이 아닌 것처럼 사실은 이 세상에 참된 의미가 있는 것이 과연 있는 것일까요? 해설사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머릿속에 여러 생각이 교차합니다.
원통보전 / 칠층석탑 / 원통보전 담장
원통보전
개념이 너무 방대하여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지만 대부분의 절에서는 절 중심에 석가모니불[창시자인 '붓다'(깨달은 자) 고다마 싯다르타]을 모신 '대웅전'이 있는 게 일반적이지만 이곳은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모시기 때문에 '원통보전'이라고 합니다.
천수관음, 관음보살 등이 모두 이 관세음보살을 지칭합니다. 깨달음을 얻으려 하는 자를 모두 보살이라고 하는데 제 이해로는 절에서 일반인들을 보살이라고 부르듯이 모두가 보살인데 관세음보살은 카톨릭이나 기독교의 '성인'정도가 되는 것 같네요. 그러고 보니 천주교의 성당에서 대표되는 성물을 모시는 것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원통보전 안에는 보물 제1362호로 지정된 건칠관음보살좌상이 있는데 2005년 낙산사 화재당시 불이 번지기 전에 다른 곳으로 옮겨놓아 화를 면해 보물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합니다.
칠층석탑
보물 제499호로 사진과 같이 원통보전 앞에 세워져 있는데 무려 삼국유사 기록에 따르면 신라시대에 조성되었고 처음에는 3층이었지만 조선 세조 13년(1467년)에 7층으로 층수를 늘렸다고 합니다. 6.25 전쟁 때 포탄에 맞아 한쪽 귀퉁이가 한쪽이 손상되었다고 하는데 그때는 이곳이 북한지역이었다고 하니 우리가 쏜 포탄에 맞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전쟁 당시 북한군이 이곳을 모병소로 썼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살펴보면 8층 같기도 하고 9층 같기도 한데 설명을 들어보니 깃이 있는 부분만을 세어 7층이라고 한다고 합니다. 조선시대로 들어오며 득세한 숭유억불 기조에 의해 점차 죽어가던 고려의 불교 미술 양식을 이어가려는 노력이 담긴 작품으로 연구와 복원의 노력이 담겨 있는 석탑이라고 하네요. (세조는 불교에 관심이 많았다고 합니다.)
원통보전 담장(원장)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집필한 '유홍준'선생이 낙산사에서 볼 것은 이 담장 하나밖에 없다고 했는데 앞서 이야기했던 보통의 절의 중심인 대웅전(낙산사에는 대웅전이 없지만)은 담장이 없는데 조선 세조가 1467년 낙산사를 고쳐지을 때 처음 만들었다고 합니다.
낙산사 담장은 담 원자를 붙여 원장(垣墻)이라고 하는데 묘리가 숨어있습니다.
해설사님께서 땅에 한자를 써가며 설명을 해 주시는데 땅에 쓴 원 垣자를 보시면 흙토자에 한 일자 날 일자 다시 한 일자가 겹쳐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원이라는 한자를 풀어 흙을 베이스로 담을 쌓되 한 일자 같은 기와를 쌓고 그 위에 날일자와 같은 원형 돌을 배치하고 다시 기와를 쌓는 형태로 한자를 그대로 표현한 천 년 전 사람들의 예술적인 시각입니다.
또한 담장의 좌 우가 높이와 모양이 다른데 대칭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옛사람들의 상식과는 조금 달라 보입니다. 이건 해설사 선생님께서도 눈여겨보지 않으셨던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어떤 건축가 분께서 좌측 담장이 더 높은 이유는 바람이 많이 부니 (실제로 양양은 여름이 지나면 바람이 엄청나게 불어 똥바람이라고도 합니다) 바람을 덜 맞고 불이나도 피해가 적으라고 이렇게 설계한 것이고 우측이 낮은 이유는 해가 빨리 그리고 더 많이 들어오게 설계한것이 아닐까라고 하셨다는 설이 있다네요.
낙산사 점심공양
코로나 이후로는 대중들에게 점심공양을 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해설사님께서 마음을 써주셔서 절밥도 얻어먹는 이색적인 경험을 했습니다. 매주 수요일은 잔치국수가 나오는 날인데 절에서는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하지요? 진짜로 고기가 없는 게 참 신기했습니다.
저마다 인사를 나누시는데 스님들을 제외하고도 낙산사에서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참 많은 게 또 인상적이었습니다. 먹을 만큼만 퍼서 남기지 않고 먹고 그릇은 본인이 직접 씻어 반납합니다.
불교 사찰에서 스님들이 식사하는 방법은 발우공양이라고 하는데 뜻은 단순이 음식을 섭취하는 행위가 아니라 붓다의 탄생부터 열반까지의 과정을 새기고 수많은 보살과 붓다를 생각하고 자연과 여러 중생들의 삶을 생각하며 보살로서 살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깨달음을 이루겠다는 수행이라고 합니다.
낙산사 탐방 총평
저는 제가 현재 생각하고 있는 소규모 관광프로그램의 연결성 및 가능성을 확인하고자 문화관광해설 프로그램을 이용했었는데 의도와는 다르게 많은 것을 알게 되고 느끼는 아주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이미 관광지화 되어 단순한 명소로서 사람들에게 인식되는 이 낙산사라는 공간이 실제로는 이 땅의 오랜 역사와 관련이 있고 그것을 한 치 앞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가 바라보지 않고 알려고 하지 않을 뿐 많은 의미를 품은 것들이 주변에 있다는 것을 알고 소개하는 분들이 있기에 결국 저도 이렇게 깊게 들어올 수 있게 된 것이겠죠.
그런 의미에서 이번 낙산사 방문과 해설사님께 들은 다양한 설명과 이야기는 제게 단순한 관광 이상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양양에서 가족여행을 계획하고 계시거나 기타 방문을 생각하고 계신 분이라면 낙산사를 꼭 방문해보시되 가능하다면 하루 전 문화관광해설사를 예약하여 저와 같이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 보시기 바랍니다.